노동자·주민이 함께 돌보는
삶과 노동의 공공성을 향하여
지구적 위기가 동네의 삶 속으로 밀려든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돌봄의 공백과 노동의 불안정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지역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이름으로 노동은 더 촘촘히 통제되거나 삭제되고, 배움과 정보의 격차는 또 다른 배제의 기준으로 작동하며, 일하는 사람의 역할과 숙련은 쉽게 지워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현실은 결코 개인의 적응력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다시 지역을 정의하고 삶과 생명을 새롭게 돌보려는 우리의 실천은,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기도 하다.
각자도생으로 내몰린 우리의 삶
오늘날의 자본과 무책임한 제도는 삶의 모든 조건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태롭게 만든다. 강남·도심 중심의 일자리 구조와 일방적인 교통망은 서울북부 노동자·주민에게 긴 통근시간과 비용 부담을 당연한 희생으로 떠넘기고, 권역 안팎의 이동 불평등을 방치한다. 지역 내 비정형·불안정 노동은 심화되고, 재개발·재건축의 압력과 전세가격 상승은 또다시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키운다. 늘어나는 1인 가구의 고립을 책임질 정책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고령화 시대에 의료와 돌봄의 부담은 여전히 가족과 여성, 저임금 돌봄노동자에게 전가된다. 교육은 함께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권리가 아니라, 끝없는 경쟁과 스펙을 쌓기 위한 비용으로 변질되었다. 삶의 조건이 조각날수록 생존은 개인의 능력 문제로 취급된다.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를 비롯해, 일터 괴롭힘과 위험의 외주화 속에서 개인의 불운으로 돌릴 수 없는 죽음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일하는 사람의 목숨값을 깎아내려 유지되는 도시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워진 노동을 드러내고, 서로를 돌보는 공공의 연대로
이렇듯 무너진 삶을 잇고, 빼앗긴 생명을 새롭게 살리는 일. 그것이 우리에게 ‘살림’이다. 노동자살림은 각자도생을 넘어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관계와 경험을 엮어내는 실천이며, 이웃의 죽음 앞에 침묵하지 않고, 일하는 그 누구도 자기 삶과 죽음을 홀로 감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듯, 한 사람이 존엄하게 살아가는 데에도 온 지역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사단법인 서울북부노동자살림의 출범을 통해, 서울북부에서 노동공공성을 실현할 주춧돌을 놓는다. 완성된 답이 아니라 함께 찾아갈 질문과 책임을 안고,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일과 무너진 삶을 돌보는 일, 이 두 가지를 우리의 이름에 담아 앞으로의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첫째, 불안정한 삶을 홀로 견디지 않도록 배움과 자치의 기반을 세운다.
지금의 노동은 더 이상 단일한 직장이나 직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청년세대는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 무업(無業)과 N잡, 취업과 이직을 오가며 유동적인 고용의 굴레에 갇혀 있다. 장년세대는 조기퇴직과 재취업의 압박 속에 놓여 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노년세대는 빈곤과 고립 속에서 생존의 책임을 떠안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안정과 내일의 전망을 빼앗긴 이들이 지금 살아가는 동네에서부터 따로 또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 우선 「삶을위한기술학교」를 통해 노동자·주민이 서로를 이끌고 배우며 자기 삶의 주체로 서는 과정을 구성하고, 그 경험을 서울북부의 더 넓은 배움과 자치의 자리로 확장해 나간다.
둘째, 보이지 않는 노동의 현실을 가시화하고 지역의 공적 책임을 세워간다.
아파트와 학교, 복지관과 병원, 공공기관과 민간위탁 현장, 골목의 작은 사업장과 플랫폼 일자리, 그리고 가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서울북부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 이러한 노동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각기 다른 제도와 고용형태 속에 흩어져 있으며, 많은 경우 지역의 정책과 공적 책임 바깥에 놓여 있다.
우리는 「자치구 지역노동정책 모니터링」을 시작으로 서울북부 각 자치구의 지역노동 현실과 정책, 지역노동센터의 현황을 살피고자 한다.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가 제도 밖에 놓인 현실, 동네 안에서 맞물려 이루어지는 지역노동 생태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리로 밀려난 노동의 실태를 확인하며, 지역사회와 지방정부가 함께 져야 할 공적 책임을 엄중히 묻는다.
셋째, 지역을 살리는 노동의 목소리를 잇고 노동공공성을 확장한다.
지역을 살리는 노동은 특정한 직종의 경계 안에만 있지 않다. 공공기관과 사회복지시설의 노동자들, 사회적경제와 비영리 부문 활동가들, 동네 곳곳에서 돌봄과 안전, 배움과 관계,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수많은 이들이 지역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들의 사회적 노동은 단지 선의와 봉사로만 설명될 수 없는, 우리 모두가 함께 기대어 누리고 있는 공공의 자산이다.
우리는 공공부문과 공익활동 영역 노동자들의 경험과 요구를 듣는 일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사회적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받고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서울북부 각 자치구의 「노동자·주민·시민사회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지역을 살리는 노동이 개인의 헌신에만 맡겨지지 않도록 공동의 의제와 활동을 조직한다.
사단법인 서울북부노동자살림은 이제 선언을 넘어 실천의 현장으로 나아간다. 일과 삶의 어려움을 개인의 무능이나 실패로 돌리는 구조에 맞서, 파편화된 삶의 문제를 공공의 언어로 엮어내고, 노동자·주민의 고통을 우리 지역과 사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공동의 책임으로 세워갈 것이다.
흩어진 경험을 모으고 끊어진 관계를 이어, 우리가 딛고 선 서울북부에서부터, 노동공공성을 우리의 손으로 새롭게 살려낼 것을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2026년 6월 30일
사단법인 서울북부노동자살림